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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나랏돈 28억 투입된 제주4·3 추가진상조사 깜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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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만에 이뤄진 정부 공식 진상조사
연좌제, 미군정 책임 등 4·3현안 다뤄
지난달 30일 정부에 보고서 초안 제출
분과위 사전심의 받아야 하는데 없어
"초안 작성 늦어져 개최 못해…송구"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 고상현 기자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 고상현 기자
22년 만에 이뤄진 정부 차원의 제주4·3추가진상조사. 보고서 초안이 최근 정부에 제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첫 진상조사에서 부족한 내용을 정부 보고서에 담는 중요한 조사지만, '깜깜이'로 진행된다는 비판이다. 보고서 초안이 만들어지기까지 사전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서다.
 
◇4·3 남은 과제 다루는 추가진상조사
 
4·3추가진상조사는 2021년 3월 전부 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이뤄졌다. 2003년 확정된 정부 4·3진상조사보고서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과 새롭게 발굴된 자료로 재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중앙위원회에서 심의 의결돼 추가진상조사가 진행됐다.
 
추가조사 대상은 △지역별 피해실태 △행방불명 피해실태 △4·3 당시 미군정의 역할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 활동 △재일제주인 피해실태 △연좌제 피해실태 등 모두 6개다.
 
이번 추가진상조사에서는 4·3평화재단이 조사와 함께 보고서 작성까지 맡았다. 정부 예산만 모두 28억 원이 투입됐다. 당초 2022년 3월부터 조사가 시작돼 지난해 12월까지 끝내기로 했지만, 보고서 작성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6개월 연장돼 지난달 30일 조사가 마무리됐다.
 
추가진상조사 모습. 4·3평화재단 제공추가진상조사 모습. 4·3평화재단 제공추가진상조사보고서 내용이 결정되면 4·3중앙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하고, 국회 보고까지 이뤄지면 정부 보고서로 확정된다. 2003년 이후 두 번째 정부 보고서가 나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4·3연구자는 "이번 추가진상조사 내용은 앞으로 남은 4·3의 과제인 미군정 책임규명 문제나 4·3의 올바른 이름 찾기와도 연관돼서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추가진상조사가 어떻게 추진되고 있고, 어떤 내용과 자료를 담고 있는지 어느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정부 예산만 28억인데 "깜깜이 조사"
 
정부 예산 28억 원이 투입된 4·3추가진상조사 보고서 초안은 조사 기한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행정안전부 과거사지원업무지원단 제주4·3사건처리과에 제출됐다. 하지만 제출되기까지 4·3특별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4·3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회 사전심의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시행령상 △추가 진상조사 계획의 수립에 관한 안건 △추가 진상조사 결과에 관한 안건 △추가 진상조사 결과 보고서 작성·발간에 관한 안건을 4·3분과위에서 사전 심의토록 한다.
 
4·3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인 양윤경 전 4·3유족회장은 "2023년 말쯤 열린 분과위원 회의에서 이번이 마지막 추가진상조사로 생각하고 시간이 걸려도 조사를 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조사 내용에 대해 분과위원 회의가 열린 적이 없다. 무책임하다"고 분통해했다.
 
2022년 11월 이뤄진 분과위원회의 모습. 4·3평화재단 제공2022년 11월 이뤄진 분과위원회의 모습. 4·3평화재단 제공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분과위원도 "정부 보고서인 만큼 내용에 대한 사전검토가 중요하다. 조사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에 대한 추가 조사나 수정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 확보한 자료나 조사내용, 보고서 초안 목차도 사전심의가 필요한데 한 번도 심의가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4·3평화재단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2022년 11월 4·3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회에 조사 활동 중간보고를 한 내용의 자료를 올린 것을 끝으로 어떤 자료도 없다.
 
◇재단 "초안작성 늦어져 개최 못해…송구"
 
4·3연구자들은 다른 지역 과거사 진상조사 과정에서도 '깜깜이 조사'와 같은 사례는 없다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고 있다. 과거사의 경우 사회적 합의가 중요해서 통상적으로 조사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사전심의와 공청회 등이 이뤄지지만, 4·3추가진상조사는 그렇지 않아서다.
 
지난해 발간된 정부 광주5·18진상조사 보고서도 공개 이후 조사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사전심의만 100여 차례 진행되고 보고회를 여는 등의 과정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이뤄진 정부 차원의 첫 4·3 진상조사 역시 수많은 토론과 보완 끝에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전 4·3중앙위원은 "4·3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회는 법정 기구다. 추가진상 조사 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자료가 수집됐는지 중간에 보고가 이뤄져야 한다. 4·3평화재단 사업도 아니고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국가사업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군정 자료 조사 모습. 4·3평화재단 제공미군정 자료 조사 모습. 4·3평화재단 제공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은 "분과위원회를 때때로 열어 중간보고를 해야 마땅하지만, 조사연구실의 초안 작성이 늦어져서 미리 개최하지 못했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다만 담당자들이 조사와 초안 작성에 힘겨워했으나 다행히 시간에 맞춰 초안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에 초안을 보내면서 여러 차례 분과위원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분과위원들에게도 향후 회의에서 열띤 토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정부 때 4·3중앙위원회 대면회의가 한 번 열리는 등 소극적이었는데,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이에 발맞춰 더욱 분발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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