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석 할아버지가 제주4·3평화공원에서 4·3 당시 희생된 형들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고상현 기자"이번에도 계엄 선포하니깐 제주 사람덜은 학을 떼는 거예요." 3일 제77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이 열린 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 양원석(87) 할아버지가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희생자 위패에서 아버지와 형들 이름을 찾으면서 이같이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하루 앞둔 터라 양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양 할아버지는 "4·3 때도 계엄 선포가 이뤄진 뒤 많은 사람이 죽었잖아요. 산에 있지 말라고 해서 해안으로 내려갔는데도 사람들 잡아다가 죽여 버리고 집도 불태웠어요"라고 토로했다.
이승만 정부는 도민을 빨갱이로 몰아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후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 진압작전을 진행했으며 해안마을 주민도 학살했다.
중산간 마을인 금악리에 살던 양 할아버지 가족도 무사하지 못했다. 산에 살았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큰 형, 둘째 형, 셋째 형 모두 희생된 것이다. 양 할아버지의 나이 10살 때 일이다.
제를 올리는 양원석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 고상현 기자양 할아버지는 오래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어 양손에 목발을 짚은 채로 위패봉안실과 행방불명묘역을 오가며 제를 올렸다. 작은 형은 4·3 당시 행방불명 돼 시신도 못 찾아서다.
그는 "아버지와 형님들 희생되고 정말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어요"라며 울분을 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덜덜' 떨었어요. '2시간짜리 계엄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지만 국회에 군인들 진입시킨 건 잘못이잖아요. 윤 대통령은 탄핵돼야 해요"라고 했다.
이날 이른 새벽부터 4·3 당시 희생된 가족을 추모하기 위한 유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만난 오병태(85) 할아버지는 4·3 당시 큰 형을 잃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마을이 불타자 집 울타리에 있던 소를 풀어주기 위해 갔다가 행방불명 된 것이다.
행방불명인 묘역. 고상현 기자그는 "형이 잘 놀아줬었어요. 지금도 많이 보고 싶어요. 부모님은 언제면 형이 돌아올까 늘 기다리시다 아들 생각하면서 눈도 제대로 못 감고 돌아가셨어요"라고 한 뒤 말을 잇지 못했다.
4·3 당시 아버지를 잃은 오민아(79) 할머니는 "2살 때 벌어진 일이라 아버지 기억도 없어요. 시체도 못 찾았어요. 오늘 아버지 돌아가신 날이라고 해서 왔지만 마음이 안 좋아요"라고 했다.
'4·3의 숨결은 역사로, 평화의 물결은 세계로'를 슬로건으로 한 제77주년 4·3희생자추념식이 이날 오전 10시부터 1분간 제주 전역에서 희생자 추모를 위한 묵념 사이렌이 울리며 거행됐다.
이번 추념식에선 식전행사와 함께 헌화‧분향, 유족사연, 추모공연 등의 본행사가 열렸다.
행방불명인 묘역. 고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