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희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장◇박혜진>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김창열 화백의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최근 제주출신 큐레이터이자 미술사가인 양은희씨가 김창열미술관장으로 선임됐는데요.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양은희 관장 모시고 얘기 나눠봅니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장으로 취임한 소감이 어떠세요?
◆양은희> 먼저 제주도의 중요한 문화기관 중의 하나인 김창열 미술관을 책임지고 맡게 되어서 일단 어깨가 무겁고요. 동시에 운영을 잘해서 더 많은 관객들이 찾아올 수 있게끔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그런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제 고향과 가까운 곳이어서 행복한 기분도 있지만 또 하나 책임감 때문에 양쪽 사이에서 열심히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박혜진> 제주출신 관장이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갈 생각이세요?
◆양은희> 개관 이후 미술관이 자리를 잘 잡은 편입니다. 처음 건축할 때부터 아름다운 건축물로 뽑힐 정도로 아주 좋은 건물이었고요. 그동안 훌륭한 전시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동안에 지켜온 수준을 잘 지켜 나가는 것도 제 첫 번째 목표 중에 하나고요.
두 번째 저는 개인적으로 제주도를 대표할 만한 글로벌한 미술관의 에 위상을 확보할 만한 곳을 찾는다면 이중섭 미술관과 김창열 미술관이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립 미술관 중에서 아라리오라든가 다른 미술관들도 꽤 있죠. 하지만 공공미술관으로서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건물과 콘텐츠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해외 관객에게도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해외 홍보에도 힘쓰겠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된 보도자료들도 널리 알리고요. SNS 등의 활동들을 좀 더 활발하게 전개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박혜진> 몇 년 전 한국화가 트렌드지수 1위로 김창열 화가가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김창열 화가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양은희> 예명처럼 굳혀진 물방울의 화가라는 타이틀을 빼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김창열 화가가 1970년대 초반에 물방울을 처음 선보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상당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사실 이건 예술가로서 굉장히 축복받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기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 세상에서 금전적으로나 인기 면에 있어서 그런 인정을 받기까지 늦으면 한 30년까지 걸리는 작가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물방울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딱 했을 때 프랑스 파리 '살롱 드메'에서 선보였는데요. 그때부터 평론가와 대중의 인기를 누리고 7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 명성이 있었고요.
지금은 더더욱 그분의 새로운 작품을 우리가 더 이상 볼 수 없는 희소가치 때문이라도 그 명성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은희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장◇박혜진> 김창열 화가와 작품의 특징, 변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청취자들을 위해 쉽게 소개해 주시면 좋겠어요.
◆양은희> 김창열 작가하면 늘 물방울의 작가가 먼저 떠오르죠. 한국 미술사에서는 김창열 작가가 사실 물방울의 작가로 기록되기보다는 1950년대 말 한국의 뜨거운 추상을 이끌었던 일련의 젊은 작가들중 한분입니다.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로 기존의 선배들과는 다른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겠다면서 1950년대 후반이면 6.25가 끝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참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날 먹고 사는 것들이 더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은 예술을 위해서 기꺼이 자기의 삶을 바치셨죠. 그 뜨거운 추상 미술을 우리는 보통 한국 앵포르멜 미술이라고 하는데요. 한국 앵포르멜 미술의 선두 주자셨고 그런 미술사적 의의가 지금도 미술사 책에 기록이 되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 작가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위상을 지키는 가장 큰 뿌리가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후에는 그분이 늘 파리에 가고 싶어 하셨어요. 1945년경부터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하십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다가 1965년에 한국을 떠나서 런던에 있는 행사에 참여하게 되세요. 간 김에 돌아오지 않고 파리, 뉴욕을 거쳐서 결국 다시 파리로 돌아가는데요. 거기서 처음 마구간에서 소박하게 작가의 삶을 사시죠. 아시다시피 나이가 들어서 이주를 한 것이기에 가난하고 쉽지 않은 삶이었을 겁니다.
그런 어려운 시간을 거쳐서 어느 날 세수를 하면서 물이 캔버스에 튕겼는데 그 물방울이 너무나 영롱하게 캔버스에 앉아 있는 걸 보고 물방울에서 전율을 느꼈다고 해요. 그것이 물방울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가 되는데요.
역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물방울을 그렇게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도 없었고 물방울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다 끌어안는 포용력. 마치 우리가 갖고 있는 상처들까지 다 덮을 것만 같은 관대함 이런 거 있잖아요.
그래서 물방울로 모든 사람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된 거죠. 추상 미술이 이분의 어떤 뿌리를 형성하는 아주 중요한 출발이었지만 물방울 화가라는 명성, 그 물방울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이고 명상적이고 포용적인 그것 때문에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박혜진> 현재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에는 현재 김창열 화백의 작품이 몇 작품 소장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양은희> 저희가 개관한 이후로 조금씩 사들여서 지금 현재는 239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박혜진> 김창열미술관 전체 소장품 중 70% 가량에 크고 작은 손상이 있다는 지적이 제주도의회에서 제기되기도 했었습니다.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요?
◆양은희> 작품들이 처음 제주도로 넘어올 때 100% 완벽한 상태로 온 작품들이 많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작가에게서 기증받은 작품 중에는 1960년대 초반 작품부터 70년대까지 쭉 있는데요.
대부분 가난한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을 보관할 때에는 캔버스에서 그린 다음 나무 틀에서 뜯어내 돌돌 말아서 보관을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그 표면에 입혀진 물감들이 둥그렇게 말아지는 과정속에서 갈라짐이 생길 수도 있고요.
작가의 작업실이 미술관의 수장고처럼 완벽한 습도와 온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상태가 시간과 비례해 온전히 보전되지 않을 수 있고요. 지금은 항온 항습이 되는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지만 이것이 또 다른 전시를 위해 밖으로 나가기도 하다 보면 그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충격이 갈 수도 있는 거고요.
결국 모든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보존 관리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만 장기간 유지가 될 수 있는 거거든요. 매해 소장품을 복원 처리하는 비용을 저희가 확보해서 최대한 시급한 작품부터 복원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박혜진> 김창열미술관은 개인 미술관이 아닌 도립미술관이기 때문에 공공미술관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어떤 생각 갖고 계세요?
◆양은희> 고민 많습니다. 일단 미술관의 입지에 따라서 관객들을 어떻게 초대할 것이냐. 어떻게 끌어모을 것이냐 이런 고민이 늘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만약 제주시 한복판에 있다면 그런 고민이 조금 덜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희는 제주시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저지리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보니 고민이 됩니다.
저희들의 관객을 분석해보면 관광객이 70~80%쯤 되고요. 도민이 20~30% 정도 됩니다. 저희들이 다양한 관객에 맞춰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고민도 하고 있고요. 또 하나는 주변 청수리, 명월리 제주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들이 꽤 있거든요. 근거리에 정주하는 분들 오랫동안 그 마을에서 80평생 90평생 살아오신 분들을 어떻게 모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공미술관의 공공성이라는 건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좋은 문화 향수의 기회가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양은희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장◇박혜진> 김창열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한 전시들도 소개해 주시죠.
◆양은희> 지금 2개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고요. '물방울 찬란한 순간' 은 김창열 작가가 물방울 작업으로 도달하기 전에 나타났던 그 실마리들 그 흔적들을 쫓아서 물방울 작업들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2월 23일까지 열립니다.
2, 3전시실에서는 '메카닉한 물방울'이라는 제목으로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저희 소장품을 가지고 만든 기획전입니다. 메카닉한은 사실 김창열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직접 쓴 표현이에요.
김창현 작가가 처음 물방울을 그릴 때는 물방울의 영롱함을 잡아내기 위해서 스프레이를 사용했어요. 어떻게 보면 약간 기계적이죠. 그리고 손놀림의 어떤 순간적인 판단도 필요한 작업들이었는데 근데 아시다시피 스프레이가 건강에 좋지 않잖아요.
당시 김창열 작가 주위에서 스프레이로 작업하던 작가들이 한두 명 사망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으셔서 스프레이를 그만두세요. 그다음에는 붓으로 물감을 찍어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변하는데요.
그런 변화를 포착한 전시입니다. 처음 스프레이 기법에서 붓을 사용한 기법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을 한눈에 포착할 수 있는 전시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4월 6일까지 전시를 하고 있고요. 물방울의 시작과 끝을 쭉 한번 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혜진> 앞으로의 계획은요?
◆양은희> 올해 전시 소개로 계획을 전하고 싶은데요. 저희가 제1전시실을 늘 물방울 작업에 할애하고 있는데 다음번 전시는 '물방울의 방'입니다.
방은 룸이란 단어도 있지만 사실 미술에 관련된 단어 중에는 캐비넷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호기심의 방이라고 진귀한 물건들을 사람들이 모아서 자기 방에 진열을 하고 손님을 초대해서 자랑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6세기 17세기 유럽에서 있었던 전통인데요.
저희가 캐비넷의 단어를 가져다가 'Cabinet of water drops' 물방울의 방이라고 하는 전시를 할 예정입니다. 김창열 작가의 1970년대 맨 처음 스프레이 기법으로 그리던 물방울의 생동감, 영롱감이 살아있는 작업들을 위주로 전시를 할 예정이고요.
4월 20일경부터는 1958년 젊은 날 김창열 작가의 친구였죠. 하인두 작가라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삶을 통해서 예술의 궤적이 또 어떻게 달라져 갔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인데요. 전시 제목이 너무 멋있습니다.
'내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한 가닥 진심'이라는 제목으로 예술가들의 진심이 작품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실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두 전시를 저희가 지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