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과승운항하다 충돌사고를 낸 화물선(빨간 원). 완도해양경찰서 제공3개월 사이 과승인원이 3400여 명에 달했던 제주 모 선사 소속 화물선. 해당 화물선을 이용한 화물차 기사들은 선사 측이 사전에 대비해 해경의 단속이 '무용지물'이라고 한다. 특히 처벌도 약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탓에 선사 측에서 계속해서 과승운항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고 당일뿐만 아니다"…상습 과승운항 제주항과 녹동항을 오갔던 5900톤급 화물선 A호. A호는 지난 2월 17일 새벽 전남 완도군 청사면 여서도 남서쪽 약 6㎞ 해상에서 9000톤급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B호와 충돌했다. 당시 해경은 경비함정과 연안구조정 등을 급파해 두 선박에 타고 있던 승선원 77명을 모두 구조했다.
당시 LNG 운반선 B호 저장탱크에 가스가 없던 터라 다행히 대형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고 충격이 컸던 만큼 가스 폭발로 이어졌다면 세월호 참사 이후 대형 인명 피해가 나올 뻔했다.
해경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졸음운전'과 '자동조타'다. 화물선 A호 선장이 졸음운전을 하고 있었으며, LNG운반선 B호의 경우 자동 항해를 하다 두 선박이 충돌한 것으로 조사됐다. 두 선장 모두 업무상 안전운항에 책임을 다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A호가 상습적으로 과승 운항한 사실이다.
사고 당시 화물차 기사가 촬영한 사진. C씨 제공사고 당시 A호에는 최대승선인원보다 29명이 더 타고 있었다. 대부분 화물차 기사로 여객이 아닌 임시승선자로 속여 과승 운항을 한 것이다. 특히 수사 결과 A호가 지난해 12월부터 사고 당일인 2월 17일까지 모두 34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을 더 태운 채 과승 운항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도내 모 선사에서 2022년 배를 인수해 취항한 A호는 사고 직전까지 주5회 제주항과 녹동항을 오갔다. 해경이 적발한 3개월 기간 대부분 과승 운항을 해왔다는 뜻이다. 특히 A호를 정기적으로 이용해온 화물차 기사들은 A호가 지난해 12월 이전부터 과승운항을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으로 단속 피하고 처벌도 약해 상습 과승운항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A호를 이용해온 화물차 기사들은 해경이 해양수산부 소속 해사안전감독관과 함께 과승 등 안전운항과 관련해 단속을 나가도 선사 측에서 미리 대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해경은 출항 전에 특별 단속을 하거나 불시에 단속을 벌이고 있다.
A호를 이용한 화물차 기사 C씨는 "배에 타있으면 갑자기 방송으로 '해경 단속이 떴으니 선장실에 숨어있으라'고 한다. 그러면 우린 숨어서 단속을 피할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과승운항을 계속해온 것이라 생각한다. 선사 측에서 어떻게 단속 사실을 미리 알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화물차 기사 D씨도 "A호뿐만 아니라 다른 항로 화물선 선사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단속을 피한다. 해경 특별단속 기간도 있지만, 경쟁 선사에서 신고해서 불시에 단속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 내부 방송으로 '단속 나왔으니 선장실이나 식당에 피해 있으라'고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6일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 안산=황진환 기자과승과 화물차 고박 불량 등 '안전 불감증' 운항이 적발돼도 처벌이 약한 점도 문제다. 과승 등 선박안전법을 위반해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수준에 그친다.
행정처분도 마찬가지다. 위반사항이 적발되면 해양수산부에서 해상교통안전법에 따라 △개선명령 △개선권고 △항해정지 처분이 이뤄진다. 개선명령과 개선권고를 해도 이행하지 않으면 2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 과태료를 내도 큰 부담이 없어 계속해서 과승 운항을 하는 것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처벌이 약하다 보니 선사 측에서 과승운항을 하는 것이다. 처벌받아도 과승운항을 하면 화물차를 더 실을 수 있어서 돈을 더 벌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어도 이윤만 쫓는다. 행정처분이든 형사처벌이든 강력하게 처벌해야 불법 운항이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